국가유산사랑
- 제목
- 바다 향 가득한 강릉 초당두부草堂豆腐
- 작성일
- 2015-02-11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8209
유서 깊은 우리민족의 보양식품, 두부
두부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한漢나라 회남왕淮南王유안(劉安, B.C.179 ~B.C. 122)에 의해 발명되어 일반 서민들에게 널리 보급된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전래되었는데, 현전現傳하는 두부에 관한 기록으로 이색(李穡, 1328~1396)의『목은집牧隱集』에는 두부를 넣은 갱羹이 등장하는데, ‘大舍求豆腐來餉(큰집에서 두부를 구하여 먹이다)’라는 시제詩題에 ‘菜羹無未久豆腐截肪新便見宣疎齒眞堪養老身(채소 국에 입맛을 잃은 지도 오래 되었다. 두부를 썰어보니 기름진 비게 같이 새롭구나 문득 보아하니 치아가 성글지 않아도 좋은 듯하니 정말로 늙은 몸을 보양할 만하다)’ 라고 두부를 예찬하고 있다.
또한『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조선에서 온 여인이 각종 식품제조에 교묘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두부는 가장 정미精美하여 명나라 황제가 칭찬하였다’는 말이 나온다. 이와 같은 두부 만들기의 솜씨는 일본에도 전해졌는데, 육당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의『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일본 병사가 조선에서 두부제조법을 배워갔다’고 하였으며 당시 우리나라 두부제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두부 만들기에 대해서『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곧 콩을 침지하여 물을 더해 가면서 맷돌에 갈아서 얻은 즙액에서 찌꺼기를 걷어낸 두유를 가열하여 간수를 넣어서 두부를 만든다 하였다.
두부는 콩으로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비지와 순두부, 두부로 나뉜다. 먼저 비지는 콩을 갈아서 천에 붓고 끓인 물을 부으면서 저어서 천에 걸러 남는 것이고, 순두부는 다시 콩물을 가마솥에 넣고 완전히 익힌 다음 약간 식혀서 간수로 해서 엉긴 상태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두부는 순두부 상태를 나무틀에 넣고 물기를 빼면 된다. 대두의 종류 및 두유의 농도, 가열온도와 시간, 응고제의 종류와 양, 그리고 압착시킬 때의 압력 등이 두부의 품질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이 된다. 또한 콩을 불리는 작업도 중요하다. 콩을 너무 불리면 맛이 빠져나가고, 덜 불려도 제 맛이 안 난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수온을 확인하고 여름에는 6~8시간, 봄·가을에는 12~15시간,겨울에는 24시간 불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춘 영양만점 초당두부
두부의 전통을 이어오는 지역 중 가장 알려진 곳이 강원도 강릉의 초당마을이다.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춘 초당두부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강릉의 특산물이다. 구수한 콩과 은은한 솔향기, 동해바다의 깊은 맛이 더해진 순백의 맛 초당두부는 화학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응고제를 사용하지 않고 마그네슘과 칼슘이 풍부한 강릉의 천연 바닷물을 응고제로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그 영양과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오로지 동해바다의 바닷물만을 두부응고제로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바닷물의 염도차이 때문이다.
태백 준령을 병풍으로 두르고 탁 트인 푸른 동해바다가 앞마당 같고 경포호수가 뒷마당 샘물같이 느껴지는 듯한 곳에 자리한 초당두부마을에는 20여 개의 두부 맛집이 모여 있어 매일 아침이면 집집마다 콩 삶는 연기가 굴뚝에서 퐁퐁 솟아난다.
초당 두부는 16세기 중엽 초당 허엽(許曄, 1517~1580)이 강릉 부사로 있을 당시 관청 앞마당에 있던 샘물이 맛이 좋아서 이 물로 두부를 만들고 간수 대신 바닷물을 사용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홍길동전』을 지은 허균(許筠, 1569~1618)과 그의 누이이자 여류시인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이후 마을이 번성하자 허엽의 호인 ‘초당草堂’ 을 마을 이름에 붙였으며, 그가 처음으로 바닷물을 이용해 두부를 만든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다.
지역사람들의 정서와 문화가 깃든 유산
초당 초두부初豆腐는 두부의 모양을 갖추기 직전의 두부로 타 지역에서는 ‘순두부’ 라 불리지만 ‘초두부 ’라 칭하는 것이 맞다. 불린 햇콩을 맷돌에 갈아 삼베 천에 걸러 가마솥에 끓여 만든 것으로 바닷물로 간수를 사용해 별도의 간이 없어도 그 자체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초당 초두부는 재래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일손이 많이 들고 생산량은 적으나 그래도 오래된 식당은 모두 재래식을 고집한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그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섬세한 손질과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근래에는 현대식 시설을 갖춘 공장이 생겨 도시민들도 초당 초두부의 특이한 맛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는 옛 방법 그대로 만드는 곳이 드문데 초당 지역만큼은 옛 방법 그대로 초두부를 만든다. 초두부를 이용한 음식들도 많은데, 대개는 따끈한 초두부 위에 양념간장을 얹어 술술 먹기도 하지만 신김치와 함께 찌개를 끓여먹고 굴, 조개 등 갖은 해물과 끓여 먹어도 별미이다.
초두부를 네모난 틀에 넣어 물기를 빼내면 모두부가 완성된다. 이 때 제거하는 물의 양에 따라 두부의 부드러움이 결정되는데 초당 모두부는 부드러우면서도 탱글탱글한 식감이 특징이다.
초당의 초두부 찌개와 초두부 전골은 국물과 함께 두부를 즐길 수 있는 요리로, 초당두부와 촛물을 기본으로 배추김치, 양념장 등을 넣어 끓인 찌개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에 부드러운 두부가 어우러져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기에 좋다.
왜 초당동 사람들은 집집마다 두부를 쑤었을까? 두부의 재료인 콩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지역도 아니다. 여느 강원도 해안 마을이 다 그렇듯 논밭이 좁다. 그 이유는 초당동은 바다와 아주 가깝지 않아 어업을 할 수 있는 지역도 아니고 논밭이 넓어 농업을 주업으로 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당연히 넉넉지 못한 마을이었지만 다행히 강릉 시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소비자를 상대로 음식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 수 있었고, 그 음식이 바로 이 지역의 향토음식인 초당두부였던 것이다.
지역의 향토음식이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음식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농수산자원의 산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리, 가공 등 복합적인 가치가 부여되어 그 지역의 정서적·문화적 생활특성을 함축적이고 종합적으로 내재하고 있으므로 후대에까지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솔향기 가득한 작은 마을에 집집마다 굴뚝에서 솟아나는 콩 삶는 연기가 생각만 해도 나의 눈과 코와 입을 자극한다.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다시 한 번 꼭 찾아야겠다
글 김정숙 (한국문화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