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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마당, 비었지만 신기한 놀이터
작성일
2015-02-1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8596

한옥의 건평은 생각보다 적다. 현재 남아 있는 이름난 대형 정통 한옥이라도 건평은 40평(132㎡)을 넘지 않는다. 한옥의 방들도 생각보다 작다. 왜 그럴까. 답은‘마당’에 있다. 마당까지 방의 영역으로 봤기 때문이다. 한옥은 마당도 방처럼 사용했다. 지금 우리가 방안에서 하는 행위들의 상당 부분을 한옥에서는 마당에서 했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글을 읽는 등의 정적인 행위는 방안에서, 그 외의 동적인 행위는 대부분 마당에서 했다. 01. 장흥존재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61호). 한옥은 자잘한 오르내림이 많다. ‘마당-기단-댓돌-대청-문지방’의 5등급이 대표적이다. ⓒ문화재청

 

02. 정읍 김동수 고택의‘사랑채-행랑마당-행랑채’구조. ⓒ임석재 03. 경주 양동 향단(보물 제412호)의 안채와 안마당. ⓒ임석재

 

불이不二사상과 마당의 탄생

마당이 활성화된 나라는 많다. 대표적인 예만 들어도, 로마의 도무스domus에서 르네상스의 팔라초palazzo로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중정형 주택이나 프랑스의 오텔hotel과 성채도 안마당이 활성화되었다. 미국에서는 창고 문화garage culture와 함께, 영국에서는 조원술, 이른바 가드닝gardening과 함께 그들대로의 마당 문화가 발달했다.

하지만 한옥의 마당은 단순히 활발하게 사용된다는 점 이상의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바로 방의 일부로 봤다는 것이다. 한옥에서는 방과 마당이 사실상 구별이 없다. 미국과 영국이 방과 마당을 명확히 구획한 것과 큰 차이다. 가옥 구조부터 그렇다. 한옥에는 복도가 없다. 문만 열면 바로 마당이다. 퇴마저 없는 경우도 많다. 방문도 여럿이며 그 문이란 것들도 대부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런 특징들을 합하면 방과 마당을 굳이 구별하지 않으려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방에서 마당으로 바로 튀어나올 수 있는 구조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대표적인 두 가지 배경 사상이 있다. 불교의 불이不二사상과 노장의 비움의 미학이다. 불이는 말 그대로‘둘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사물을 편 가름해서 보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주로『유마경維摩經』에 나오지만 굳이 경전을 따질 것 없이 불교의 보편적 가르침이다. 불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나의 생각과 편견으로 사물을 분별해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이 사상을 공간에 적용하면 실내와 실외를 굳이 구별하지 말라는 것이 된다. 한옥의 공간이 그렇다. 실내는 방이요 실외는 마당이니 방과 마당을명확히 구획하지 않고 하나의 큰 공간으로 같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한옥의 마당이 탄생했다.

불이 시상은 노장의 비움의 미학으로 발전한다. 마당을 확보한 다음 비워두는 것이다. 실제로 정통 한옥의 마당은 가급적 비워뒀다. 잘해야 액자 속 풍경화처럼 창 앞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비웠다. 비우면 더 큰 선물이 생긴다. 유명한 도자기의 교훈에 비유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도자기의 요체를 딱딱한 껍질로 보지만 노장에서는 그 속의 빈 공간으로 본다.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마당을 비워서 생기는 선물은 마당의 긴요함에서 찾을 수 있다. 마당은 정말 요긴하다. 기능과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집안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생활의 중심지이다. 행랑채의 행랑마당은 농경시대 때 농업활동의 중심이었다. 사랑채의 마당에서는 관혼상제나 잔치 같은 문중을 대표하는 행사가 열렸다. 사랑채가 별도의 마당을 갖지 않을 때에는 행랑마당이 그 역할을 겸했다. 안채의 안마당에서는 안주인이 여자 식솔들을 지휘하면서 집안일을 이끌었다.

04. 홍성 사운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98호) 안채. 안채의 안마당에서는 안주인이 여자 식솔들을 지휘하면서 집안일을 이끌었다. ⓒ문화재청 05. 안동 의성김씨 종택(보물 제450호)의 안채. 방에서 문만 열면 바로 마당이다. ⓒ문화재청

 

06. 해저만회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69호) 사랑채. 사랑채의 마당에서는 관혼상제나 잔치 같은 문중을 대표하는 행사가 열렸다. ⓒ문화재청

 

상대주의적 다질성을 즐기다.

한국인 특유의 상대주의 국민성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한국인은 한 방향으로만 굵고 곧게 난 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로와 샛길, 갈림길과 곧은길이 적절히 섞인 ‘재미있는’ 길을 좋아하며 이런 길을 즐긴다. 이합집산과 합종연횡. 흔히 한국인의 파벌을 얘기할 때 쓰는 말이지만 잘 따져보면 산하가 이루어지는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다른 것이 모이니 이합이요 모였다 흩어지니 집산이다. 종으로 합하니 합종이요, 횡으로 이으니 연횡이다. 본디 산줄기와 강줄기가 이렇지 않던가. 한옥의 원통 공간에 나타난 갈림길과 선택권은 이런 자연의 형상을 옮겨 놓은 것일 수 있다.

한옥에 동선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매우 과학적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동선이 여러 개라는 사실은 이동 과정에서 느끼는 경험의 종류가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혜의 선물이다. 시간 따라, 형편 따라, 기분 따라, 계절 따라 ‘골라가는 재미’ 가 있다. 이동 중간에 보는 장면이 각각이고 맡는 냄새와 듣는 소리 또한 제각각이다. 이것들을 조합해서 즐기면 된다. 한옥은 다질성을 보장해주는 집이다. 집 안에서의 이동이 즐김과 감상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일상생활에서 정말로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07. 안동 의성김씨 종택(보물 제450호)의 놀이터 같은 다양하고 가변적인 동선. ⓒ임석재.

 

글 임석재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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