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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정보화·세계화 시대의 포용정신과 언어순화로 회복하는 공감 문화
작성일
2015-02-1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275

단일민족을 이유로 우리의 민족적 우수성을 내세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선사시대 민족형성 과정에서 다양한 부족이 합쳐졌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왜구나 북방 민족 등을 포용하기 위한 적극적 동화책을 쓰며 한반도에 정착하게 한 역사적 사실들은 오히려 개방적 민족성을 통한 발전사를 보여주고 있다. 퇴계 이황(李滉, 1501~1570)과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이기론 논쟁,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와 묵암 성혼(成渾, 1535~1598)의 논쟁 등을 통해 우리의 사상과 철학 속에서도 토론과 관용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우리 민족의 개방적 포용성을 다시금 찾게 되는 이유다.

 

언어문화로 살펴보는 사회의 포용지수

조선 중기 유학자인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7년간 서신을 통해 성리학의 사단칠정론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해왔다는 자체도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이와 직위 등을 뛰어 넘어 개방적·포용적 자세를 갖고 학문적 논쟁을 해온 태도 자체에 더 주목을 하게 된다. 당시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에 오른 59세의 대학자였고, 기대승은 갓 과거시험에 합격한 33세의 청년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상대방의 논점에 대해서 정중하게 지적하고 견해를 받아들이며 토론을 했다.

2015년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그들과 같은 합리적·포용적 논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소통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생각의 겨를도 없이 소통, 아니 감정의 일방적인 분출이 이뤄진다. 감정이 격해지다보면 논점은 사라지고 상대의 인격을 모욕하거나 다른 허점을 찾아내 비난하기에 바쁘다. 자신의 주장만이 최고인 양, 상대의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가로막기에만 급급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인들의 SNS 글이 논란이 되고, 서로를 비방하며 SNS에서 논쟁을 벌이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언어 행태가 익명성을 이용한 온라인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심각성이 더 커지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공직사회, 학교 등 사회 전반에서 원색적인 막말과 비난,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고 있다. 주차나 소음 시비가 도를 넘는 욕설과 막말이 계속되면서 살인사건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언어폭력이 물리적인 폭력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는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사회 전반에 막말과 욕설, 비방 등의 언어 행태가 만연돼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도덕성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 예의가 사라지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포용적 자세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동시에 언어는 우리의 사고에도 영향을 주는 도구이다. 욕설은 뇌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하고 공포와 분노를 일으켜 또 다른 욕설을 분출케 한다. 결국 부정적 언어와 사고가 악순환을 일으키며 사회의 건강한 소통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01.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정보화·세계화 시대에서 현대인에게 공감의 문화와 포용정신이 요구되고 있다. ⓒ이미지투데이 02. 2013년 12월 열린 언어문화개선 범국민연합 출범식에서 홍보대사들이 위촉패를 받고 있다. SNS 상에서 비방과 논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언어순화를 통한 공감문화 형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연합콘텐츠

 

청소년들의 언어 훼손과 그해법을 보여준 연극제

사회 전반에서 모범적인 언어의 전형을 보여주지 못하다보니 청소년의 언어 문제 또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말과 생각은 분리될 수 없는 연계성을 가진다고 했을 때, 청소년들의 지나친 욕설은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나 인지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물론 청소년 시기에 각종 은어나 비속어 등을 사용하며 자신들만의 또래 문화를 형성해 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으로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의 언어 문제는 그 수준을 넘어섰다. 욕설을 쓰는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습관적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거리낌 없이 쓰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욕설을 금지하는 도덕교육 자체만으로는 그 실효성을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주관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지난해 12월 23일에 열린 청소년연극제‘안녕! 우리말’이다. 청소년들 스스로 무분별하게 비속어를 사용하고 있는 자신의 일상을 연극을 통해 재현하면서, 바람직한 언어를 사용하도록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들의 연극에서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써온 거친 말들이 시초가 돼 따돌림, 학교 폭력으로 이어지며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언어문화의 개선을 통해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이나 느낌을 정확히 파악하고 표현해 가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문화를 회복하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다. 언어순화 운동 차원을 넘어 인성교육을 통해 관용의 마음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근본 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

03.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교육부가 전개하고 있는 학생언어문화 개선 캠페인의 일환으로 고운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콘텐츠 04. SNS 상에서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소통은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언어의 표현 자체도 거칠고 단조롭다. ⓒ연합콘텐츠

 

이해와 공감 문화의 회복 방안

우리 사회가 다양화, 개방화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채 자신과 다른 것은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며 소통의 문을 닫고 있다. 자신과 같은 입장을 취한 사람들하고만 더 빈번한 소통을 하다 보니 의견은 점차 양극단으로 치닫기까지 한다. 다양화된 사회 속에서 그 다양한 요인으로 인한 갈등은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논쟁에 대한 합리적 대화와 협의는 사라지고 비방과 험담, 인신공격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심지어 온 국민이 아파했던 세월호 참사의 사후처리 과정에서까지 정치적 이념이 다른 외부 세력이 개입되면서 사고 해결에 대한 본질은 묻히고 정치적 쟁점으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같은 현실에서 포용의 정신을 회복하는데 기여할 모범을 우리의 역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시대 원효의 화쟁사상이 그대표적 예이다. 원효는 분열된 불교 종파로 인한 갈등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논쟁들의 공존을 통해 조화와 통일을 이루려는 자세를 갖고 저서『십문화쟁론』을 통해 화쟁의 정신을 일깨웠다. 조선후기실학 또한 성리학 중심의 사회에서 외부의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받아들이며 개방적 포용성을 보여준 사례이다.

차이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발전을 가능케 하는 것임을 우리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차이가 다양성으로 승화되지 못하면 차별과 억압, 폭력 등의 행태로 귀결된다. 우리 사회는 정보화,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폭넓은 문화적 다양성, 상이한 이해관계, 다양한 국제교류로 인한 사회적 변동과 갈등이 심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사회의 개방적 포용 문화가 더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개인적인 인식 개선과 함께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고 지적했다. 이해와 공감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선‘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세상의 많은 갈등과 오해는‘나’라는 틀에 갇혀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좁은 틀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정의하면 포용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를 국가의 일원, 세계시민의 한 사람과 같이 넓게 정의해야 한다.

우리 교육도 과도한 경쟁 일변도의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나 혼자 잘 사는 법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울려 잘사는 법을 중심으로 가르쳐야 하는 시대가 왔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협력학습을 통해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줄세우기’ 평가를 지양해 가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한 토론문화를 조성하고 나눔을 추구하는 등 관용적인 풍토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핵심을 벗어나지 않고 논쟁을 해가는 토론의 모델을 매체를 통해 제시하고, 사회에 존재하는 이기주의적 행태를 지적하며 대안을 마련하는 지속적인 캠페인 활동이 필요하다. 또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말로써 재미를 추구하려는 프로그램에 대한 개선을 통해 언어순화와 관용의 정신을 실천하는 전형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국교총에서는 다양한 사회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인증, 지속적으로 운영해 가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청소년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선생님과 어머니가 협력하고 이를 국가와 사회가 뒷받침해주는 ‘학사모일체學師母一體운동’ 을 전개하기로 했다. 가정교육을 바탕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가치를 되살리고 건전한 소통의 길을 열어갈 수 있도록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

05. 이황이 기대승의 서신에 대한 답한 글. ⓒ한국고전번역원 06. 원효가 불교의 여러 가지 이론을 정리한 십문화쟁론 원효는 이 책을 통해 분열된 불교 종파와 이로 인한 논쟁들에 대해 화쟁의 정신을 일깨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07. 이황과 기대승이 7년간 사단칠정론에 대해 논쟁을 벌인 서한을 모아 놓은 양선생서  ⓒ국립중앙박물관

 

글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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