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사랑
- 제목
- 역귀야 물렀거라~ 잡귀야 물렀거라~ 동지가 나가신다
- 작성일
- 2007-11-13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2766
동지는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24절기의 하나로서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옛날에는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에 왕실에서는 이 날을 원단과 함께 으뜸 되는 축일로 여겨 군신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을 베풀었으며,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를 파견하였다. 그밖에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에 ‘동문지보’란 어새를 찍어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동지하면, 떠오르는
음식의 대명사 ‘팥죽’
민가에서는 동짓날이 되면 붉은 팥으로 죽을 쑤었는데,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죽 속에 넣곤 하였다. 이러한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고, 시절 음식으로 삼아 제사에 쓰기도 하였다. 또 팥죽 국물은 역귀를 쫓는다 하여 벽이나 문짝에 뿌리기도 하였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방과 장독,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렸다. 양의 색인 붉은 팥죽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져 질병이 없어진다 하였으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로 보내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악귀를 쫓을 수 있도록 하였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는 따스한 풍습이 있었는데, 절에서도 대량으로 죽을 쑤어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다. 이는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으며, 공부를 방해하는 마귀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경사스러운 일이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다.
무시무시한 귀신을 혼내는
붉디 붉은 동지팥죽
동짓날, 팥죽을 쑤게 된 유래는 중국에서 시작된다. 공공 씨의 못난 아들이 동지에 죽어 전염병 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은 평상시 팥을 특히 무서워했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해,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쑤었던 것에서 동지팥죽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팥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서 역신 혹은 역귀뿐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데 널리 이용되어 왔다. 팥의 붉은 색이 ‘양’을 상징함으로서 ‘음’의 속성을 갖는 역귀나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지에 먹는 팥죽은 단지 화를 피하고 복을 부르는 주술적인 기원 외에도 기나긴 겨울을 슬기롭고 과학적으로 지낸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즉 팥은 단지 귀신이 붉은 색을 싫어한다는 주술적인 의미뿐 아니라, 섭취시 인체에 많은 열을 내주는 식품으로서 절기 중 가장 추운 동지에 몸을 보양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결국 보다 풍성한 한 해의 수확을 위해 동지부터 봄을 준비하는 마음을 담은 우리 조상들의 슬기라 할 수 있겠다.
조상들의 삶과 함께하는
겨울 풍경, ‘동지’
매년 동지 때에는 제주목사가 특산물인 귤을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이에 궁에서는 진상받은 귤을 종묘에 올린 다음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고, 멀리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음식과 비단 등을 하사하였다. 뿐만 아니라 귤을 진상한 것을 임금이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이밖에도 동짓날에는 부적에 ‘뱀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여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동짓날 날씨가 따뜻하면 다음해에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을 거라 예견하였고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 여기며 미래를 점치기도 하였다. 또 동지부터 섣달그믐까지는 시어머니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기 위해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지곤 하였는데, 이는 모두 풍년을 빌고 다산을 기원하는 뜻의 풍정이었다.
▶글 : 이광렬 동화작가
▶일러스트 : 백금림